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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한때 동물원에 있었어요.

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려면

빵 한쪽이라도 더 얻어먹으려면 어떻게 처신 해야 할지

잘 알만큼 영리했지요

 

나는 나의 영리함이 짐짓자랑스러웠습니다

그들 흉내를 낼 때마다

말 한마디를 따라할 때마다

박수 갈채와 환호가 잇따랐지요

 

나는 사실 말을 할 줄 알았답니다

그러나 누구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고

잊혀진 말은 동굴 속 깊은 곳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

 

내 친구, 카프카의 원숭이를 아시나요?

그는 아마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겠지만요.

언젠가 도망친 말을 불러 타고 그를 만나러 갔는데

그가 이사한 신식 아파트에는 내 말이 들어갈 문이 없었어요.

그는 아파트 생활이 퍽 즐거운 모양입니다.

 

내 말도 실망했습니다.

내 말은 달이 밝은 밤이면 이따금 돌아오곤 하지만

언젠가 이 아이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.

 

나는 어느 날 창살을 구부리고 나왔습니다.

생각보다 창살의 두꺼워 많이 휘어지지 않아서

비좁은 틈새로 간신히 통과 할 수는 있었지만

날카로운 모서리에 베어 피가 많이 났어요.

 

하지만 잘 되었습니다.

나는 이제 앞으로 걸어가면 되고

내 말도 흘린 핏자국 보고

날 찾아 올 테니까요.

 

달빛 아래 검게 변한 얼룩이 보입니다.

아마 이 길을 걸어 가다 보면 나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에요.

흘린 피만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나는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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